성령 copy

1. 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신 이유
2. 보혜사이신 성령님
3. 성령의 본질은 오묘임
4. 증인이신 성령
5. 그리스도의 대리자
6. 하늘에서 온 비둘기
7. 그대 그릇 안에 있는 기름
8.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9. 계속 흘러 들어오는 기름
10. 우리 마음속의 누룩
11. 주어진“생수”
12. 생명을 주는 수액
13. 왕국의 새 포도주
14. 타오르는 불
15. 불의 혀
16. 새 생명의 수여자
17. 은혜의 소나기
18.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심
19. 우리를 위한 성령의 기도
20.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함
21. 성령께서 우리 사이에 운행하심
22. 성령께서 우리를 방문하심
23.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
24. 성령이 우리를 비추심
25. 성령은 근심할 수 있음
26. 성령께서 떠나심
27. 성령을 거역하는 죄
28. 성령을 의도적으로 거절함
29. 지금이 회개할 때임
30. 성령께서는 인내하며 기다리심
31. 성령께서는 항상 기다리심
32. 거듭남
33. 구원받도록 선택됨

1. 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신 이유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약속을 주셨을 때는, 그의 지상 봉사가 마지막에 이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죄를 담당하실 자로서 그가 져야 할 그 죄악의 무거운 짐을 온전히 깨닫고 십자가의 그늘 아래 계셨습니다.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기에 앞서, 그분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베푸시려고 하신 아주 필수적이고 완전한 선물에 대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선물을 통하여 그들은 그분의 무한한 은혜의 근원에 이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구주께서는 그의 대리자이신 성령께서 강력한 사업을 행하시러 오실 그 때를 가리키고 계셨습니다. 수세기 동안 축적되어 온 죄악이 성령의 능력으로 격퇴될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세상 끝 날까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오순절 때부터 지금까지 보혜사 성령은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온전히 바친 모든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은 권고자로, 성결케 하는 자로, 인도자로, 그리고 증인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신자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할 때 그들은 구주의 사랑과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더욱 힘있고 분명하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기에 걸친 박해와 시련의 시간 동안 남녀들은 그들의 생애에 성령의 임재를 크게 누렸으며 세상 가운데 이적과 기사를 베푸는 자들로 섰습니다. 그들은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 구속하시는 사랑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2. 보혜사이신 성령님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만약 우리가 다음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련의 날에 우리가 어떻게 설 수 있을까요?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5,26)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시기로 선택하신 주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들 앞에 드넓은 진리의 대지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었고,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것들을 기억나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주신 위로는, 하나님의 감화하심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마지막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이 약속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약속을 소중히 간직하지도 않으며, 교회의 경험 가운데서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도 못합니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의 약속을 별반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는 문제로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명을 끼치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예상되는 것은 영적인 가뭄과 암흑, 쇠퇴 그리고 죽음뿐이었습니다. 사소한 문제가 마음과 영혼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번성에 신령한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했더라면, 다른 모든 축복들이 연이어 가져왔을 신령한 능력이 부족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소한 것에 만족해 있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것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선물이야말로 마음을 정결케 유지해 줄 방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것에 대해 굶주려 하지도, 갈급하지도 않습니까?

3. 성령의 본질은 오묘임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7).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 우리가 꼭 정의할 수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혜사, 즉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시면서 성령께서는 “자의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분에 대해서 분명히 언명되어 있습니다(요 15:26; 16:13).
성령의 본질은 오묘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주께서 인간들에게 그것을 계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공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성경절을 모아 거기에 인간적인 해석을 가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하여 교회가 튼튼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이러한 오묘에 관하여는 침묵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성령의 직무는 다음의 그리스도의 말씀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죄인이 성령의 소생시키는 감화에 응답하면 그는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일의 중요성에 관하여 깨우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회개하는 죄인에게 성령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은 구주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효력 있게 만들어 주는, 재생시키는 대리인으로서 보내신 바 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시선을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드려진 위대한 희생 제사로 향하도록 이끌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며, 죄를 깨달은 영혼에게 성경의 귀중한 것들을 열어 보이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십니다.

4. 증인이신 성령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만약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믿는 영혼은 하나님의 의지에 완전히 순복합니다. 하늘의 왕께서 자신을 낮추셔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사람과 거룩하고 친밀한 교제를 하십니다. 그리고 풍성하게 나타난 그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은 부드러워져서 어린아이 같은 의존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속절없고 무가치한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는 그분의 능력과 기꺼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과 몸을 의탁해야 합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저 끊임없이 활동하는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혼들을 이끌고자 하는 한 목적을 가지고 열성적인 믿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는 것은 논리적인 설교, 즉 지성을 확신시키는 설교가 아닙니다.

마음은 설득되고 부드럽게 녹아져야만 합니다.
그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어야만 하고, 모든 열망은 하늘을 향해 지향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존재를 장악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물은 우리 자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임명하신 것을 믿음으로 보기 때문에 전혀 혼돈이나 불신은 없습니다.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고,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겠다는 엄숙한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리스도의 대리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보혜사는“진리의 성령”으로 불리웁니다. 그분의 일은 진리를 정의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진리의 성령으로 마음 가운데 거하시므로 보혜사가 되십니다. 진리 안에 위로와 평안이 있습니다. 진정한 평안과 위로는 거짓 가운데서 발견될 수 없습니다. 사단이 마음을 지배할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은 거짓 이론들과 전통들을 통해서입니다. 거짓 표준들에게로 사람들을 가게 함으로써 사단은 품성을 그릇되게 꼴 지웁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은 마음에 말씀하시고 마음에 진리를 새기십니다. 그와 같이 성령께서는 오류를 폭로시키시고 영혼에서 그것을 내어 쫓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택한 백성들을 자기 자신에게 복종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는 진리의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의 직무를 묘사하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고취시켰던 기쁨과 소망으로 제자들을 고취시키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풍부한 도움을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그분의 백성을 높이시기 위해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모든 선물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개심시키는 대리자로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악의 세력은 강해져 왔고, 사단의 사로잡는 세력에 대한 인간의 복종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죄는 제한된 힘이 아닌 신령한 능력의 충만 가운데 오실 신성의 제3위 되신 강한 대리자를 통해서만 저항되고 극복될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마음이 정결케 되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믿는 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으로 기우는 모든 유전적 및 배양된 경향들을 극복하고, 그의 교회에 자신의 성품을 각인하시기 위해 신령한 능력이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6. 하늘에서 온 비둘기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요 1:32)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 되십니다. 아버지께 드린 그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늘이 열렸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과 교통하고, 순종하는 신실한 자들의 마음에 거하실 것입니다. 사단에 대항하고 시험 받을 때에 승리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성령을 열심히 구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던 것처럼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중 봉사를 열렬한 기도로 시작하셨으며, 그의 모본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 데 기도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줍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지속적으로 교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생애는 우리가 모방해야 할 완전한 모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그의 생애의 기록을 살펴보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은 작은 숲이나 산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께 끈기 있고 열렬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몇 가지 능한 이적을 행하도록 요청 받으시기 직전 그분은 자주 온밤을 기도로 지새우셨습니다. 하루의 수고를 마감하고 그 밤 기도 시간 동안, 그분은 동정 어린 마음으로 제자들이 쉼과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반면에 그분은 인류를 위해서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열렬한 탄원을 하나님께 쏟아 부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응답으로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의무를 감당할 능력을 얻으셨고 시련에 대처할 수 있는 굳건함을 얻으셨습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본은, 우리가 대적을 저항하고 승리할 은혜와 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결코 실패함이 없는 힘의 근원으로 나아갈 통로를 우리 앞에 열어 놓으셨습니다. 요단강 둑 위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대표자로 기도하셨고, 열린 하늘과 승인의 음성은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가납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킵니다.

7. 그대 그릇 안에 있는 기름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3,4)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와 일치된 삶을 사는 데 실패하며 진리의 감화는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등잔에 기름이 떨어졌던 미련한 처녀들과 같습니다. 기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 영혼 속에 들어오신 성령을 상징합니다. 많은 기도로 성경을 열심히 탐구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슬기로운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은‘예’와‘아니오’가 아니라,‘예’와‘아멘’입니다.

복음의 요구는 원대합니다. 사도는“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합니다.

성경의 웅대한 진리를 마음의 바깥뜰에 놓는다면 실제적인 경건은 얻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상 신앙은 삶의 대소사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절실하게 필요했던 기름은 바깥에 부어져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를 영혼의 성소 속으로 들여와,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하고 정화케 하고 성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불확실하고, 단절되는 교리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리인 성경의 신성한 가르침입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 안에 중심을 둔 영원한 관심사들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신령한 진리의 완벽한 체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영혼의 구원은 진리의 터전이요 기둥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품성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으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는 하늘에 다다르고 영원을 포괄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8.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
바람은 잎사귀와 꽃을 살랑거리게 만들며, 그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들립니다. 그러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바람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이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심의 과정을 확실한 시간이나 장소를 대어 말할 수 없고, 그 모든 환경들을 자세히 추적할 수 없다 해도 이것이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받는 사람이 혹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리게 하는 감명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감명들은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나 성경을 읽거나 실지로 목사의 말을 들음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성령께서 더욱 직접적인 호소를 하실 때에 그 영혼은 기쁘게 자신을 예수께 바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갑작스런 회심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꾸준하고도 오래 계속된 과정을 거쳐서 호소하신 결과인 것입니다.

바람 그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결과를 드러냅니다. 그와 같이 영혼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도 그 구원하는 능력을 체험한 사람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나타나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생애가 변화됩니다. 죄악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악한 행위와는 인연을 끊게 됩니다. 사랑과 겸손과 화평이 분노와 시기와 분쟁을 대신합니다. 기쁨이 슬픔을 대신하고 용모는 하늘의 빛을 반사합니다. 아무도 짐을 덜어 주는 손을 보지 못하며 빛이 하늘 조정에서 내려오는 것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때에 축복이 임합니다. 그때에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능력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9. 계속 흘러 들어오는 기름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슥 4:12~14).

선지자 스가랴에 의해서, 교회에 대한 성령의 간단없는 교통이 다른 상징으로 대표되었습니다. 그 상징에는 우리를 위한 놀라운 격려의 공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1~4,6,12,14).

두 감람나무에서 금기름은 금관을 통해 등잔으로 흘러 들어가고, 다음에는 성소를 밝히는 금등대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 있는 거룩한 자들로부터, 그의 성령은 그의 봉사에 헌신한 인간 도구들에게 나누어집니다. 두 기름 발리운 자들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빛과 능력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위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앞에 서 있습니다. 감람나무가 기름을 금관으로 흘러 보내 자신을 비우는 것처럼, 하늘의 기별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나눠 주려 애씁니다. 하늘의 모든 보화는 우리의 요구와 수령(受領)을 기다립니다.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이번에는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거룩한 등대에 기름이 채워지며, 교회는 세상에서 빛을 나르는 자가 됩니다.

10. 우리 마음속의 누룩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눅13:20,21).
이 비유는 각 개인의 심령에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모습을 좇아 교회를 꼴 짓는, 복음의 침투력과 동화력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누룩이 가루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성령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여, 그 모든 역량과 능력을 흡수 동화시키고, 영과 혼과 몸을 그리스도에게 일치하게 만듭니다.

비유에서 여자는 누룩을 가루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이 비유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력으로는 구원을 소유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진리는 마음속에 받아들여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령한 누룩은 작용을 시작합니다. 변화시키고 생기 넘치는 능력으로, 신령한 누룩은 마음속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새로운 사상들, 새로운 느낌들, 새로운 목적들이 일깨워집니다. 마음은 변화되고, 기능들은 활동을 시작합니다. 사람에게 새로운 재능들이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재능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죽어 있었던 양심이 일깨워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이 변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단지 성령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이 진리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내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은 다 이러하니라”(요 3:6~8).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는 누룩의 비유가 가르치는 교훈을 이해할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품성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도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1. 주어진“생수”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구속의 계획이 은사로 시작하고 은사로 마쳐지는 것처럼, 그 계획은 은사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치른 동일한 희생의 정신이 하늘의 은사에 참여하게 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거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보내시면서“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한 사람들 안에는 이기적인 것이나 배타적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그것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령은 사막에서 솟구치는 샘과 같아서, 모든 것에 생기를 주고, 멸망 직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샘물을 마시기를 열망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이 수고를 했던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했던 것과 동일한 사랑과 자아 희생의 정신이었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엡 3:8)셨다고 그는 말합니다.

우리 주께서는 그분의 교회가, 우리가 그분 안에서 발견하는 충만함과 넉넉함을 세상에 반영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택을 계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선을 세상에 나타내야만 합니다. 온 하늘이 구속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지구의 모든 곳에 기별자들을 바쁘게 보내는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오묘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는 신체의 모든 지체들을 다스리시는 머리이십니다. 무한한 자비하심으로 예수님은 인간 마음에 역사하셔서, 천사들이 경탄과 기쁨으로 바라볼 만큼 너무도 놀라운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12. 생명을 주는 수액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1,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 교인들처럼 마음에 작용하시는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이보다 더 분명하게 가르쳐진 진리는 없습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이 주제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영적 생애를 유지함에 있어서 그분의 성령의 작용에 대한 예증으로서 식물계의 성장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셨습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포도나무의 수액이 가지로 확산되어 성장을 유지시키고 꽃과 열매가 맺힙니다. 그처럼 구주에게서 나오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능력도 영혼에 스며들어 동기와 애정을 새롭게 하고 생각들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하며 받은 이에게 거룩한 행위의 귀중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합니다.

이 영적 생명의 창시자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며, 생명을 나누어 주고 유지시키는 정확한 방법은 인간의 철학의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은 항상 기록된 말씀과 일치합니다. 천연계에서처럼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연계의 생명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지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요 우리 가까이에 두신 축복들을 사용함으로써 유지됩니다. 그와 같이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섭리로 공급된 이 방법들을 사용함으로써 유지됩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장성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생명의 떡을 먹고 구원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는 깨어 기도하고 일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13. 왕국의 새 포도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 2:22).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모심으로, 이기심과 죄를 마음에서 지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 지도자들의 마음은 바리새인의 사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새 포도주를 담기에 적합하지 않은 낡은 가죽 부대들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분은 그의 왕국의 새 포도주를 넣을 새 부대를 찾으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바리새인들에게서 돌아서서 갈릴리의 비천한 어부들을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일찍이 알고 있었던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교육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입술로부터 나온 말씀들을 받아서 취하여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그분의 사업을 위해 교육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허망한 것과 경박한 것들을 비우는 그만큼 확실하게, 그 빈 곳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성령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마음에 쌓은 선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들, 풍부한 사상의 보석들을 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자아에 집중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사상과 애정은 그리스도에게 머물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태양이 우리에게 비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샘을 고갈시켰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고갈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필요를 느끼자마자,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실 수 있습니다. 그 샘은 언제나 가득차 있습니다.

14. 타오르는 불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직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현대 진리의 기별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많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아 여기저기로 급히 다니면서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붙는 불과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비추려는 불타는 열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학식 있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러 나가도록 독려될 것입니다.

미래에, 일상적인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그들의 일상적인 직업을 버리고 자비의 마지막 기별을 선포하러 나갈 것입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들은 일을 위해 준비될 것이며, 하늘의 대리자들과 협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과 시간을 주의 사업에 헌신하고 또 헌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일꾼들을 방해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사명을 성취하러 나갈 때 그들의 성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지상의 험한 곳에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어떤 조소하는 말도 그들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생애의 최선의 것들인 단순성, 정직성, 진실성, 정결, 결백한 고귀함은 매매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항상 신뢰하면서, 단순하게 수고하는 겸손한 사람들은 우리 구주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들의 끈기 있는 기도는 영혼들을 십자가로 데려올 것입니다. 그들의 자아 희생적인 노력에 협력해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심령을 감동시키셔서 영혼을 회심시키는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일꾼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15. 불의 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4).
우리가 온유하고, 가르침 받고자 하는 정신으로 성경을 살핀다면, 우리의 노력은 부요하게 보상될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성경은 기도와 함께 연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성령의 조명(照明)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위치에 있기만 하다면, 그분의 빛은 부요하고, 명확한 빛줄기로 우리를 비춰 줄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제자들의 경험이었습니다. 성경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 2:1~3)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히 구할 때, 그와 유사한 축복을 기꺼이 주고자 하십니다.

주께서는 초대교회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후에 하늘의 저수지를 잠그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의 축복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은 그분의 보화로 가득차 있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그분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적 권태와 무관심, 나태 때문입니다. 이 형식성과 무감각에서 벗어나도록 합시다. 이 시대에 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하고자 하시는 것을 절반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16. 새 생명의 수여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하나님께 가납될 만한 봉사를 하기 위하여, 우리는 “거듭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적대적인 우리의 선천적 기질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남녀들로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낡고 새로워지지 못한 삶은 사랑과 신뢰, 그리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새 삶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런 변화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수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요 3:7),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신 하늘 왕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있게 될 것이고, 세상적인 계획들이 도입될 것이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이상한 불이 그분께 드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불안과 근심이 가득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중생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변화는 오직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하심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것만이 우리를 모든 부정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고 꼴 짓도록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식별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이 나라에 들어감을 얻을 수 있기 전에 이루어야만 할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만과 자아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을 대항합니다. 영혼의 모든 선천적 경향은 자기중심적 기질과 자만에서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비함으로의 변화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영생으로 가는 길을 가려고 한다면, 자아의 속삭임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과 회오 가운데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탄원해야 할 것입니다.

17. 은혜의 소나기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 10:1).

동방에서 이른비는 파종기에 내렸습니다. 그것은 씨가 발아하기 위해 필수적이었습니다. 기름지게 하는 이른비의 영향 아래, 부드러운 새싹이 움터 오릅니다. 그 계절의 거의 끝에 내리는 늦은비는 곡식을 익게 하고 추수를 준비시킵니다. 주께서는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이러한 천연계의 작용을 사용하십니다. 이슬과 비가 먼저 씨를 발아시키고, 그 다음에 곡식을 익게 하고 추수를 준비시키는 것처럼, 성령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영적인 성장 과정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곡식의 익음은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이 우리의 품성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형상(likeness)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비를 받아들이기에 상당 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공급해 오셨던 모든 은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부족된 것이 늦은비에 의해 채워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가장 풍요한 은혜가 부여되는 그때에, 그들은 그것을 받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열고자 하나 그들이 심각한 잘못 가운데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그분의 빛과 지식을 주심으로 시작하신 그 일은 계속 진행되어야만 하기에 그러합니다. 각 사람은 분명히 자신의 필요를 인식해야 합니다. 마음은 모든 불결을 비우고, 성령께서 거할 수 있도록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의 부어짐을 위해서 죄의 고백과 포기, 열렬한 기도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헌신함으로써 준비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동일한 일이, 보다 더 깊게 지금 행해져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인간 대리자는 단지 축복을 구하면서 주께서 그에 관한 일을 완전케 하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일을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온전케 하면서, 그의 일을 마칠 것입니다.

18.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심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은 모든 진정한 기도를 불러일으키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간구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와 모든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이런 우리의 간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며, 그분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롬 8:26)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병자나 다른 궁핍한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모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우리가 하나님께 배운다면, 우리는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일치되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가운데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게 간구해야 하며, 귀한 말씀을 의지하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선언합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거룩케 하는 성령의 감동을 주고, 그분 자신으로부터 그분의 백성들에게 생명력 있는 감화를 불어넣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지금부터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나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 대리자들 안에 사시고, 우리의 재능을 통해 일하시고 우리의 역량을 통해 활동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그분의 의지에 복종해야만 하고, 사는 것이 더 이상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되도록 성령과 함께 활동해야만 합니다.

19. 우리를 위한 성령의 기도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하나의 통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 하나의 이름, 우리의 대언자 주 예수의 이름을 통해서만 그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의 성령은 우리의 기도에 영감을 불어넣으십니다. 어떤 다른 불도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서 흔들었던 향로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기도가 그분께 받아들여질 만하려면, 주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에 그 불붙는 갈망을 불러일으키셔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의 필요에 대한 깊은 의식,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에 대한 강한 열망이 우리의 기도를 특징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기도들은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즉시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여 지치거나 간청을 중단해서도 안 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여기서 침노가 의미하는 것은 야곱이 나타낸 것과 같은, 거룩한 열심입니다. 우리는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줄기차게 우리는 은혜의 보좌에 우리의 간청을 열렬히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그분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 기도의 목적은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참 모습의 상태인, 연약하고, 무지하고 속절없는 자신을 볼 때, 우리는 겸손한 간구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거나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확실한 표시와 증거는 자신이 위대하거나 선하다고 느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심령의 자만은 항상 심령의 빈곤과 관련이 있습니다.

20.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함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소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과 친족이 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는 강력한 말씀들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거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6,1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심령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가까이하고, 삶 속에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임재하시게 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각 사람은 그분의 사랑의 은혜가 그의 마음속에 있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곳에 그분과의 협동이 있음이 드러날 것이며, 한때 육적 본성이 나타났던 곳에, 하나님의 속성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의 백성은 의의 일꾼이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 자요, 그분의 뜻을 계속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할 것입니다. 천사와 사람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그의 나라의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및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룩함이라는 귀한 열매들이 맺혀질 것입니다.

21. 성령께서 우리 사이에 운행하심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죄로 죽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 아래 죄를 깨닫고 회심하게 되는 것을 압니다. 경솔하고 고집불통의 사람들이 진지해집니다. 강퍅한 사람들이 죄를 뉘우칩니다. 믿음 없는 자들이 믿게 됩니다. 도박을 일삼는 자, 술주정뱅이, 부도덕한 자들이 차분해지고 말쑥해지고 정결해집니다. 반항적이고 고집 센 자들이 온유해지고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이 그 사람 전체를 탈바꿈시켰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보지 못했지만, 완고하고 냉혹한 죄인들의 품성이 변화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그분의 역사의 증거는 볼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우뚝 솟은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성령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할 수 있으시며, 유한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한계를 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능력의 감동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 것입니다. 그의 확신은 너무나도 깊어서 감정의 격동은 심령을 격발하게 하고, 몸과 마음은 진리의 확신케 하는 능력 아래 부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회개하는 영혼에게 용서를 말씀하실 때, 그는 열심에 충만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차게 되고 원기 왕성하게 되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시므로 그의 사랑의 감정은 과거의 비탄과 고민에 비례해서 깊고 열렬하게 됩니다. 그의 영혼은 터져 버린, 큰 깊음의 샘과 같게 됩니다. 그는 하늘의 거문고가 기쁨의 음조를 울릴 때까지, 감사와 찬송, 기쁨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는 간증 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꽉 짜여진 보통의 형식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속량함을 받은 영혼이며, 그의 전 존재는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음으로 감격하게 됩니다.

22. 성령께서 우리를 방문하심

그 안에서 너희도…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하나님의 성령의 깊은 감동하심으로 성령께서 오시는 일의 특성이 성경에 공개되었습니다. 성경은 성령께서 임하신 영혼들 앞에 놓여진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곧 대적의 격렬한 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대적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허지로 돌아가게 만들 시험들을 가지고 그들을 압박할 것이며, 성령께서 나타내시고 증거하신 중대한 진리가 하늘의 빛을 받은 사람들을 정결하게도 거룩하게도 하지 못하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 빛을 간직하지도 못하고 그 빛에 입각하여 활동하지 않는다면, 영적 광명의 시대는 그에 상응하는 영적 암흑의 시대로 변할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신령한 감동을 소중히 하지 않고 거룩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감화는 마음에서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영적인 지식 가운데 진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샘 옆에 서서, 은혜스럽게도 그들에게 열려진 구원의 우물물을 되풀이해서 마실 것입니다. 그들은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샘물을 떠나지 말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이 나타난 곳에서 감사와 사랑에 부푼 마음으로 그들은 계속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요 6:36). 이것은 많은 경우에 글자 그대로 성취되어 왔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진리에 대한 통찰과, 자비롭고 긍휼하시며 사랑이신 그의 품성에 대한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비추임을 받은 후에 그들은 그에게서 떠나 불신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빛을 다른 영혼들에게 반사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거룩한 계시에 조화되게 행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행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잃어버린바 되었습니다.

23.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기 위해 내려 오셨습니다. 빛과 진리와 능력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을 자신에게 어떻게 복종시키십니까? 그의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입니다. 성령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마음에 말씀하시고 인간의 마음에 진리를 새기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보혜사를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확약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3,14절).

그리스도의 이 약속은 충분히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결핍으로 인해 율법의 정신과 율법의 영원한 의무는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관계는 여전히 존재하나 희미하게 이해될 뿐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어렴풋이 이해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납하시는 헌신의 성격을 인간의 마음에 드러내시는 것이 성령의 직무입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영혼은 계몽되며, 품성은 새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고상하게 됩니다.

24. 성령이 우리를 비추심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5).

“빛이 있을 동안에 다”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단 하나의 빛 줄기도 놓치지 말고 모으십시오. 빛 가운데서 행하십시오. 우리에게 제시된 진리의 모든 가르침을 실행하십시오.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그 때 우리는 예수께서 어디로 가든지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 주께서 증거에 증거를 더하시고, 빛에 빛을 더하시는데 영혼들은 왜 이 빛 가운데 걷기를 주저합니까? 왜 사람들은 빛에서 더 큰 빛으로 걷기에 왜, 그렇게 게으를까요?

주께서는 구하는 그들에게 그의 성령을 주시기를 거절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주의하지 않습니까? 모든 주저와 지체로 인해 우리는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기가 더욱더 어려워지고 마침내 훈계와 경고에 감동되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자신을 놓게 됩니다. 죄인들은 더욱더 쉽게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 24:25)고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빛 안에서 행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을 따르고 자신의 판단을 따라 행하므로 심각한 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양심은 점점 무뎌집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더욱더 멀어지고 범죄자는 자기 자신의 범죄에 열중케 됩니다. 고집으로 그는 모든 호소에 저항하고 모든 조언과 충고를 멸시합니다. 그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모든 준비에서 돌아섭니다.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자의 목소리는 심령에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더 이상 그를 제어하는 권세를 발휘하지 못하며 “그는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호 4:17)는 선고가 내려집니다. 그의 홀로 서기는 얼마나 암울하고, 음침하며 완고합니까! 죽음의 무감각이 그의 마음에 있는 듯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영혼이 통과하는 과정입니다.

25. 성령은 근심할 수 있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심각한 일임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십자가는 너무 무겁고 자기 부정은 너무 커서, 스스로 일하기를 구하며 주의 사업에 참여하려 하지 않을 때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성령은 각 영혼 속에 거하려고 구하십니다. 성령이 존귀한 손님으로 환영을 받는다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질 것이고 시작된 선한 일은 마쳐질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사상, 하늘의 사랑,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들이 불순한 사상, 비뚤어진 감정, 그리고 반항적인 행동들을 대신할 것입니다.

성령은 신령한 교사입니다. 만약 그분의 교훈에 유의한다면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받은 하늘의 가르침을 망각하고 불경건한 마음의 선천적 경향을 따르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각자는 자아에 대항해서 자신의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에 유의하십시오. 만약 성령의 가르침에 유의한다면, 그 가르침들은 되풀이되어서 마치 바위에 영원히 새겨진 글씨처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마음에 한 보좌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그에게 복종되어져야만 합니다. 선천적 습관과 욕망은 영혼의 더 고상한 필요에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을 전혀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도를 따르면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성화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중도 하차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신의 선천적인 충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다른 영혼을 잘못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26. 성령께서 떠나심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하나님의 성령을 저항하여 떠나시도록 한 자들은 사단이 그들을 얼마나 극단으로 끌고 갈지 알지 못합니다. 성령이 그 사람을 떠났을 때 그는 한때 바른 빛에서 죄라고 여겼던 그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 경고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의 경우처럼 그를 배반자와 장님이 되게 한 속임수에 스스로 말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사단의 발자취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어느 누가 그를 설득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슬퍼하며 떠날 때, 주의 종들이 행한 모든 호소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말을 곡해할 것입니다. 만약 사단의 대리자들에게 미혹되지 않았다면 그들을 전율하게 했을 성경의 가장 엄숙한 경고의 말씀들을 그들은 비웃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행해진 모든 호소는 헛것이 됩니다. 그들은 꾸짖음이나 조언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모든 간청을 경멸할 것이며, 그들이 한때 옹호하고 높였던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을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치 않도록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는 사도의 말은 그런 영혼들에게 얼마나 적절한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옛 본성은 계속해서 자신을 다시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영혼 안에서 진리의 구속하시는 은혜 되신 성령이십니다. 그는 감정 전체를 거룩케 하십니다. 그는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가고자 소망하는 영혼들을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성령의 영향 아래서, 그대로 성령을 간직할 경우 영혼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옛 습관과 관습, 행동에 변화가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화의 일은 영혼 안에서 계속되어서 점점 진보하고 확장되게 됩니다.

27. 성령을 거역하는 죄

그러므로…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 12:31).

빛과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경고와 간청을 들었으면서도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 길로 떠나서 도덕적 방탕에 빠져 다시는 용서를 얻지 못한다는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왜 사단의 학교에서 오랜 시간 교육을 받으며, 회개와 개혁이 불가능한 행동 노선을 추구하도록 그들 자신을 내어놓습니까? 왜 자비의 제안에 저항합니까? 그들이 하고자 하면 끝내는 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지경에까지 왜 “나를 내버려두라”고 말합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목이 곧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우리들은, 개혁을 위해 결단을 내릴 준비가 갖추어질 미래의 어느 날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 회개는 우리의 권한 밖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빛과 특권들에 준한 어두움이, 빛에 있는 동안 빛 안에서 걷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신비스럽고 막연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회개의 초청에 응답하기를 지속적으로 거절하는 죄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첫 배교자를 둘러쌌던 분위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늘 아버지와 아들을 둘러싼 분위기보다 이 분위기를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허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제시되었다고 하여 한 영혼도 낙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뜻 행하기를 노력하는 한 영혼도 낙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주 예수께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무한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28. 성령을 의도적으로 거절함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2).

예수께서 사귀 들리고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시는 이적을 두 번째로 행하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마9:34)는 비난을 되풀이한 것은 이 일이 있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행위로 여김으로 축복의 근원에서 자신을 차단하고 있다고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신적인 신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사유하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다면 죄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고 이를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과 교통하실 수 있는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을 끝까지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위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하실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잘못을 시정하고 안전한 길로 저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빛을 보내십니다. 눈이 멀고 마음이 강퍅케 되는 것은 이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흔히 이 과정은 점차적이요 거의 알아챌 수 없게 진행됩니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한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영적 감각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서 두 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암흑은 증가되고 마침내 영혼이 밤과 같이 어두워집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으나 진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 돌렸습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그들은 고의로 기만을 선택하였습니다.

29. 지금이 회개할 때임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됩니까?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합니다. 이제 그는 교만, 자부심, 그 밖의 다른 악한 특성이 그를 지배하도록 자신을 내어줍니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성령의 증거를 거절하고,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의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그것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즐겨 그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버립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마6:23)라고 하신 말씀이 입증됩니다. 이 죄를 범해온 사람들이 한동안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품성을 나타낼 환경이 되어지면 그들은 스스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에 속한 사람인지를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다는 것, 즉 사단의 검은 깃발 아래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께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자복하고, 모든 죄악을 버립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그분의 모든 약속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2)는 은혜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0. 성령께서는 인내하며 기다리심

“볼지어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계3:20).

나이가 든 고명한 자이든 어리고 연약한 자이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진리를 명백하게 배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만이 심령을 구원하시는 참 진리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생의 말씀을 정직한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는 배우고자 하는 모든 영혼들을 가르치기 위해 인내하며 기다리십니다. 잘못은 세상이 이제까지 알았던 교사 중 최고로 위대한 교사인 자원하신 그 교사에게 있지 않습니다. 잘못은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고 그의 인간적인 이론들을 포기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배우려 하지 않는 학생에게 있습니다. 농부가 땅을 갈 듯,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듯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마음이 교육받고 훈련받도록 마음 밭을 잘게 갈아야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고 알려주시는 말씀에 마음을 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은 신령한 형상에 따라 형성되고 꼴 지어져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청년들과 노인들에게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만약 너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생의 안내자로 삼지 않는다면, 너희는 그의 지혜와 그의 영적인 삶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3~56).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3절).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며 그것을 가장 열심히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열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심장부에 진리를 취하며,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는 그 믿음을 통해 성령의 성화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우리의 근육들은 우리가 먹는 생명의 양식에 의해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영적인 근육들도 우리가 매일 심령에 받아들이는 말씀들로 하늘의 영양분들을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31. 성령께서는 항상 기다리심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그분의 직임을 행하기 위해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배우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에 자신을 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보혜사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칠 것이며, 기억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은 성취되고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 학교의 학생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영혼에 대한 부담감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영혼들(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랍비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전통과는 아주 상이한 그리스도의 교훈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존중하도록 배운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지배할 하늘의 권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인간의 교훈과 계명들로부터 벗어나야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지성에 확실한 진리와 귀중한 보석처럼 인식되고, 사랑 받고, 행해진 후에야 그들은 살아 있는 빛나는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거룩한 삶을 사신 다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에게 위탁하신 가치 있는 보석들 안에 있는 유산을 교회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오류와 유전이 섞이지 않은 귀중한 교리들을 교회의 수중에 두시기 위해 제자들을 보관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의의 태양이신 세상의 빛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께서 그의 이름으로 보낼 보혜사 성령을 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세상의 구속자가 보내기로 약속한 신령한 성령은 하나님의 임재이며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은혜가 결핍하여 하나님의 대적에 의해 고통 받고 세상의 압제에 의해 시달리도록 세상에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보혜사 성령을 통해 백성들을 도우시며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32. 거듭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삶의 전체 목적은 하늘에서 처럼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3,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계급 제도, 피부색, 계층의 차이가 그의 왕국의 백성이 되기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부나 유전적 우월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들만이 그의 왕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왕국은 이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거듭나고, 변화된 영적인 성품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의 백성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의 힘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그분의 왕국에 적합함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의 신령한 능력으로 그들에게 합당한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죄와 죄된 행실로 죽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이 되살아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목적을 위해 그들에게 주신 재능은 정화되고, 정결해지고, 고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령한 형상을 따라 품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때때로 그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잘못 사용하고 또 그것이 죄 되게 사용되었을지라도, 비록 그들이 불순종으로 말씀에 걸려 넘어져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을지라도, 그들은 마침내 그의 사랑에 이끌리어 본분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그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십니다.

33. 구원받도록 선택됨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로와 아무 상관없이 주시는 그분의 은총을 이같이 경이롭게 나타내심에 대